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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생활/쿠르드 이야기

역향수병이라는 것이 있다

by mmgoon 2011. 5. 21.

hanna

 

 

외국에를 살면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향수병이 생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보거나 먹거나 경험할 때 ‘아, 나중에 한국 돌아가서 이걸로...’ 하는 식의 생각이 드는 것은 정말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좋다고 한들 외국은 외국이고 나는 이 나라에 사는 외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역향수병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외국에 살면서 대부분 처음에는 욕하면서 시작하더라도 결국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 나라가 슬슬 그리워지는 것이다. 뭐랄까 얼마 사귀다가 별로 좋지 않은 기억으로 여친 혹은 남친과 헤어졌지만 얼마 지나고 나면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영국 살면서, 날씨를 욕하고, 음식을 욕하고, 느려터지 시스템을 욕하면서 슬슬 이것들에 익숙해지면,

한국에 들어와서 완벽하게 돌아가고 잽싸게 끝나는 시스템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다가도

문득 빈스온토스트(beans on toast, 캔에 들어있는 콩을 덥혀서 토스트에 올려 먹는 요리)나 그레이비 소스가 그리워지는 때가 있고,

손끝 하나 까딱하면 오는 치맥에 겨워서 (아- 땡긴다) 펍에서 한 잔씩 마시던 진한 맥주가 그리워지는 것이고,

 

베트남 살면서 인간들 욕하고, 더럽다고 짜증내고, 잔병들이 많다고 뭐라고 하지만 슬슬 이런 것들에 익숙해지면,

한국에 그 깨끗하고 정상적인 시스템과 몸에 맞는 옷들에 감사하다가도, 문득 길거리에서 먹던 비아 허이 (생맥주)나 라우(일종에 전골)이 땡기고, 자칫하면 배탈나는 냉커피가 미친듯이 먹고프며, 다시 그 인간들을 만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국에 시원하고 포쉬하며 깨끗한 맥주바도 좋지만 왠지 냄새 폴폴 나고, 뭔가 어설픈 작은 골목의 맥주집이 그리워지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게 뭐랄까 조국은 이쪽이기 때문에 쉽사리 대놓고 말하기가 그리 녹녹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팀월이랄까 소속감이랄까 유대감이 강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대놓고 다른 나라가 그립다고 하면 ‘그래 그 나라 돌아가지’ 라든가 ‘아이고 이게 아직 인간이’ 혹은 ‘뭐야 현지처라도 만든 건가’ 등등의 반응이 직간접적으로 몰려온다.

 

그러니까 외국에 살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향수병 이외에 역향수병이라는 것이 생긴다가 주제인데, 정작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옆에 앉은 wellsite geologist와 수다를 떨다가 과연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두바이나 쿠르드에 이런 향수를 가질까 하는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뭐 사람은 모르는 것이니까, 혹은 시에미 싫어라 하면서 결국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니까 정말로 나중에 대추야자라든가 케밥이라든가 차이를 그리워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지만, 뭐랄까 아직까지 드는 생각은 정말로 이 동네는 정을 붙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으음 역향수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뭔가 중동스러운 것들을 구입할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