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지질학/석유와 천연가스

이라크 및 쿠르드 석유개발 역사

mmgoon 2011. 2. 18. 19:10

현재 이라크라고 알려지는 나라는 역사적으로 볼 때 메소포타미아 지역인데 이는 그리스 말로 ‘두 강 사이의 땅’ 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강 즉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은 북쪽에 아나톨리아 고산지역에서 발원하여 페르시아만으로 들어가기 바로 전에 합쳐진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커다란 도시들과 정부들을 세웠고 농업, 문학, 수학, 점성학을 발전시켰는데 이 시기부터 원유와 역청(bitumen)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이 원유와 역청은 이라크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원유 침출(seepage)지역에서 생산되었다.


이들 원유와 역청들은 19세기에 자그로스 산맥과 그 주변지역들을 조사하던 지질학자들의 주목을 받게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원유 부존가능성은 1908년 Anglo-Persian Oil Company (APOC)가 Masjid Sulaiman 유전을 발견하면서 큰 주목을 받게된다.




이라크 최초로 Chia Surkh에 시추된 유정은 실제로는 이라크에 시추된 것이 아니라 나중에 1913년 국경계약에 의해 오토만 제국으로 편입되는 페르시아 지역에 위치한다. 

APOC은 1902-1903년 시기에 유정을 시추하는데 원유와 가스를 발견하였으나 더 유망성이 높은 남부를 개발하기 위하여 버려진다. 

그러나 APOC사는 1909년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와서 Naft Khaneh (페르시아 말로 ‘원유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불리는 원유 침출지역에 시추를 한다. 

이 시추공은 마이오세 증발암이 덮개암인 마이오세 석회암 (Jeribe 층)에서 41.5°API의 원유를 발견한다. 

이 유전은 1925년 APOC의 자회사인 Khanaqin Oil Company에 의해 개발되는데 이 회사는 1927년 인근 Khanaqin 마을에 있는 정유공장까지 연결하는 파이프라인도 건설한다. 

이 정유공장과 파이프라인은 이라크 최초의 것들이다.



영국, 프랑스, 미국간의 대립 동안 2회의 지질조사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대해 수행된다.

최초의 것은 1918-1919년에 인도 지질조사소 소속인 Edwin Pascoe가 주도했고 이 후 1919-1920년에 Shell의 지질학자인 Arthur Nobel와 Ralph Evans가 지질조사를 수행한다.



1920년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TPC1)의 독일지분을 프랑스가 가지는 것으로 합의를 이룬다.

이 합의는 미국을 화나게 했는데, 당시 미국은 자국 원유 공급 차질 및 매장량을 크게 걱정하여, 

미국계 회사들은 외국에서 원유 탐사사업을 전개하고 영국으로 하여금 중동 식민지 기업들에 대해 문호를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New Jersey Standard Oil Company 사장인 Walter Teagle은 TPC사를 계속 졸라서 결국 그가 메소포타미아 지역 석유탐사에 미국의 자본, 기술 그리고 정치적인 지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1925년 3월 24일 TPC는 이라크 정부로부터 새로운 광구를 분양 받아 APOC사 지질학자가 주도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지질학자들이 포함된 대규모의 지질조사를 실시한다. 

이 시기 시추대상구조 평가는 지질학자들간의 큰 논쟁거리였다. 비록 1926년에 발행된 공식 보고서에는 Kirkuk 원유침출 지역이 추전 되지는 않았지만 

이 조사에 참가했던 지질학자들은 서면으로 Pulkhana와 Kirkuk이 북부 이라크 folded zone에서 최고의 시추위치라고 보고했다.


TPC는 Pulkhana에 2개공과 Kirkuk 1공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 4개공을 시추하기로 결정한다.

아이오와 대학 지질학과 교수가 Kirkuk 지질단면을 작성하고 TPC 최고 수석 지질학자가 시추위치를 결정했다.

이 시추결과가 1927년 10월 14일에 원유를 발견한 Baba Gurgur-1 공이다. 

이 공에서 원유 분출이 하도 거세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여 분출을 막는데에만 9일이 걸렸다. 

이 때까지 이미 일단 95,000배럴을 산출을 보였다. 

생산 저류층은 올리고세 석회암 (Kirkuk group)으로 마이오세 암염이 덮개암이고 지질구조는 Masjid Sulaiman 및Naft Khaneh 유전과 유사하다. 

원유의 성상은 36° API, 황함유량 2%를 보인다.


시추결과를 바탕은 TPC는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데, 기존 북쪽으로는 터키에서 남쪽으로는 예멘에 이르는 오토만제국의 국경을 재설정하고 

참여사들에게 이 지역 내에서 독자적인 석유탐사 활동을 금지했다. 

비록 TPC 참여사들은 소위 ‘적선협약 (Red Line Agreement)'에는 동의를 했지만 결국 이 협약은 향후 큰 대립의 원인이 된다.

 

1927년 키르쿡 유전발견은 이라크 석유개발 및 중동 석유산업의 이정표가 된다.


1929년 TPC는 공식적으로 회사명칭을 이라크석유회사 (Iraq Petroleum Company, IPC)로 개명하고 다음해에 이라크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


1931년 이라크 정부는 IPC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 동 사에 원유 1톤당 4실링의 세금을 순금으로 내고 최초 20년간 최소 40만 파운드를 지불하게 한다. 

키르쿡 유전으로부터 원유 생산 및 수출은 IPC가 원유를 트리폴리 (레바논)과 하이파 (당시 팔레스타인) 소재의 정유공장으로 운반하기 위한 파이프라인을 건설한 1934년부터 개시된다. 

키르쿡은 아직까지도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큰 유전이고 125억 배럴 이상의 원유가 아직 남아있으며 현재 일산 60만 배럴을 생산한다. 현재까지 약 500개 공이 시추되었다.


1932년 계약으로 인해 IPC의 활동은 티그리스강 동부만으로 제한되고 이라크 북서부는 새로운 컨소시엄인 Mosul Petroleum Company가 담당하게 된다. 

그리고 1938년 Basrah Petroleum Company가 이라크 남부를 담당하게 된다. 

이들 세 자매회사들은 이라크 석유산업의 학을 이루고 자유를 만끽하다가 1973년 이라크 정부에 의해 국영화가 된다.

이 시기까지 IPC 및 자회사들은 키르쿡 (Kirku), 잠브르 (Jambur), 바이하산 (Bai Hassan), Rumaila, Butmah 등의 유전을 개발하였고 몇몇개의 발견을 성공시켰다.


1970년대는 탐사와 개발이 빠르게 확장된 시기로 생산은 일산 350만 배럴, 매장량은 60억 배럴에 이르게 된다. 

11개의 저류층을 가지는 Majnoon 유전을 포함한 수많은 super giant 급 유전들이 발견되고 1974년에 이르러서는 확정 매장량이 315억 배럴이 되는데, 이는 주요 저류층만을 포함한 것이다. 

이 저류층 상하부에 산출시험을 실시하지 않은 저류층들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당시 일산 1000-2000 배럴 정도의 저류층은 생산능력이 작다고 보통 관심대상에서 제외되었었다.


현재 500개 이상의 지질구조가 대규모 원유를 부존한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대부분의 구조들은 아직까지 시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현재 대부분의 원유생산은 단지 20개 유전에서 이루어진다. 

이라크 정부는 2010년말까지 생산량을 8백만배럴로 증산하겠다자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2007년까지 쿠르드 지방정부 (Kurdistan Regional Government)는 독자적으로 외국회사들과 생산물분배계약 (PSC) 및 양해각서 (MOU)를 쿠르드 지역 원유 탐사 개발을 위해 체결해왔다. 

이 중 중요한 것들은;


2004년 6월 DNO와 체결한 Tawke 유전. 현재 생산중임

2004년에 Genel Enerji/Addax Petroleum과 체결한 Taq Taq 유전

2004년에 A&T Petroleum/Hawler Energy와 체결한 Bina Bawi 광구

2004년 Petoil/Prime Natural Gas사와 체결한 Chia Surkh 광구

2006년 5월 카나다 Western Oil Sands사와 10억 배럴 규모가 예상되는 Western Zagros 광구

2005년 Heritage 사 Miran광구

2006년 Sterling Energy와 Sangaw 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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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29년까지 이라크석유회사(Iraq Petroleum Company, IPC)를 Turkish Petroleum Company (TPC)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TPC는 이의 약자. 세계적인 거대 석유기업들이 공동으로 설립하였고 1925년에서 1961년까지 이라크 석유개발의 독점권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