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쿠르드 이야기

쿠르드 정보 - 아르빌

mmgoon 2008. 10. 13. 16:17

아르빌에 대한 자료를 정리했습니다.

이거 해석이 영- 아닙니다. 부디 새겨서 읽으시기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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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빌 (Arbil, Erbil, 혹은 Irbil이라고도 쓴다; BGN: Arbīl; Arabic: اربيل‎, Arbīl; Kurdish: هه‌ولێر, Hewlêr; Syriac: ܐܪܒܝܠ, Arbela, Turkish: Erbil)은 

이라크에 있는 인간이 계속 거주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에 하나이다. 


이 도시는 모술 동쪽으로 80km 떨어져 있다. 

아르빌은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이다.




개요


명칭:  Arbil, هه‌ولێر, 쿠르드식 이름: Hewlêr 

좌표:  36°19′60″N 44°1′0″E  

국가:  이라크

Governorate  Arbil 

거주시기: 기원전 23세기

Governor  Nawzad Hadi 

인구  총 2,886,756명 (2008년 조사)

Time zone  GMT +3 (UTC)    일광절약시간 GMT +4 (UTC)


 


역사


고대역사


아르빌 도시의 역사는 적어도 기원전 2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의 고고박물관에는 단지 이슬람교 이전 물건만 전시되어 있다. 

아르빌이라는 이름은 비스멕타이트(non-Semitic) 기원으로 보이며, Hurrian 족의 숫자를 나타내는 뜻으로 보인다. 

아르빌이라는 이름은 수메리아 경전 (약 기원전 2000년)에 Arbilum, Orbelum 혹은 Urbilum 등으로 나타나 있다. 

이후 아카드 언어로 기원을 추정해보면 네 명의 신 (arba'ū ilū)가 된다. 

아르빌은 아시리아의 여신인 Ishtar를 경배하는 중심이었다. 

예전에는 아람어인 Arbela 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메디아 제국시절에는 메디아 왕 Cyaxares이 자그로스에 사는 다수의 Sagarthia 사람들을 Arbela 와 키르쿡에 거주시켰는데, 

아마도 Nineveh를 함락시키는데 이들의 도움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Media의 Phraortes 왕이 이끄는 메데 사람들의 반란 (기원전 522-521) 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에 의해 진압된 이후 

Arbela의 Sagarthia 인들은 다리우스에 대한 반란을 계속하여 메디아 반란을 지속시켰다. 

다리우스는 메디아 장군인 Takhmaspâda를 보냈고 기원전 521년 여름 메디아의 위대한 왕인 Cyaxares의 후손을 자처하는 Tritantaechmes가 이끄는 Sagartia 사람들을 물리쳤다. 

다리우스에 의하면 Arbela의 반란은 메디아사람들의 마지막 반란이었고 진압되었다. 

이 사건은 Kermanshah 근처에 Behistun Inscription으로 새겨졌다.



기원전 331년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물리친 가우가멜라 전투 (The Battle of Gaugamela)는 아르빌 서쪽 약 100km 떨어진 곳에서 일어났다. 

전투이후 다리우스는 가까스로 아르빌로 도망쳤는데 이런 대면을 Arbela 전투라고 잘못 알려졌다.


Hewlêr라는 이름은 Horlêr라고 불리던 메소포타미아에 쿠르드인들이 살던 역사적 도시에도 사용되었는데 쿠르드어로 “태양의 신전”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쿠르드 사람들이 믿으면서 태양과 불이 중요한 역할을 하던 아마도 Mithraism, Yazdanism 및 조로아스터교에서 온 것으로 생각되어 진다.


Amida (Diyarbekr) 처럼 아르빌은 Sassanian 시기에 로마와 페르시아 분쟁지역이었다. 

Trajan 황제하에서 이 지역은 로마의 일부인 아시리아로 이름 붙여졌고 1세기의 독립 이후 다시 로마에 의해 지배되었다. 

유대인 왕국인 Adiabene (그리스어로 Hadyab) 이 아르빌을 중심으로 잡았고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한 동방 기독교의 존재로 인해 중도적 입장이었지만 

도시와 왕국의 이름이 유대 중동 역사에 왕족이 유대교로 개종했다고 나타나 있다.


Arbela느 초기 기독교의 중심이었다. 서기 100년까지 도시에 주교 본부가 있었다. 

대부분의 초기 주교들은 유대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이 도시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에서 개종한 사람들로 보인다.


Adiabenia의 여왕은 명백하게 기독교를 받아들였으며 기독교는 이 지역으로 퍼져나가 이 지역이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결과 동방 교회의 메소포타미아인들이 살게되었다. 

Butler의 성자의 삶 (Lives of the Saints)에서는 345년 거의 350명의 기독교인들의 페르시아 사산왕조시기 납골당의 위치로 나온다.


 


중세역사


10세기까지 아르빌은 점차 북으로 이동하는 Hadhabani (Adiabeni) 쿠르드인들이 살았다. 

1310년 아시리아 사람들은 아랍에 의한 학살로 고생하였으나 쿠르드인들은 여기서 제외되었다. 

아람어를 하는 아시리아 사람들은 1397년 Timurlane의 군대에 의해 도시가 파괴될 때까지 많은 수가 거주하였다. 

기독교 시기가 도래하고부터 많은 신부들과 아람어의 파생어인 Syriac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들이 왔다. 

13세기에 아르빌 출신 Syriac 작가인 Gewargis Warda Arbillaya가 아르빌의 기독교인들과 이웃한 지역의 아시리아사람들을 Ninevite의 승전축일 기도를 위한 기도서에서 묘사했다. 

Timur의 습격으로 하나의 기독교 도시만이 살아남았으며, 아르빌은 이슬람교 신자가 주를 이루는 도시가 되었다. 

지역적 상황으로 인해 터키, 아랍, 페르시아, 쿠르드 지역은 이슬람교화 되어갔으며, 아르빌도 13세기에 유명한 이슬람 역사저술가인 Ibn Khallikan의 고향이 된다.


현대의 아르빌은 오토만제국의 요새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중세에 아르빌은 바그다드와 모술을 잇는 주요 교역중심이 되었으며, 현대까지도 외부세계와 연결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약 15,000명 정도 되는 소수의 아시리아인 기독교인들은 아인카와(Ainkawa)와 같은 도시 외곽에 거주하고 있다.


아르빌의 쿠르드어 이름은 Hawler로 태양이 경배되는 곳 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쿠르드어인 helio (태양)에서 기원되었다.



현대역사


이라크 정부와 Mustafa Barzani가 이끄는 쿠르드 민주당의 협상을 통하여 쿠르드 자치정부의 의회가 1970년 아르빌에 성립되었으나 

걸프전 이후인 1991년 쿠르드의 승리 (Kurdish uprising)까지 사담 후세인에 의해 지배되었다. 

법들은 90년대 중반 쿠르드의 두 주요 세력인 쿠르드 민주당 (Kurdistan Democratic Party; KDP)과 

쿠르드 애국연합 (Patriotic Union of Kurdistan; PUK)간의 전투가 일어나던 시기까지도 실제로 유효하지 못했다. 

아르빌은 1996년 사담 후세인의 지원을 받은 KDP가 차지하였고, PUK는 이에 반해서 슐레마니아에 다른 정부를 세웠다. 

1996년 3월 PUK는 KDP와 싸우기 위해 이란의 지원을 요청했다. 이를 외국의 공격으로 간주한 KDP는 이라크 중앙정부에 지원을 요청했다.


사담 후세인의 군대가 다시 아르빌을 약탈하는 동안 많은 NGO와 국제조직들은 도망을 해야했다. 

이들 조질들은 UN 및 다른 나라들의 원조를 받아 쿠르드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했으며, 미국이 처음으로 괌에 이주를 시켰다.


아르빌의 쿠르드 의회는 1997년 쿠르드 정당들간의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다시 개원했으나 실제적인 힘은 없었다. 

아르빌의 쿠르드 정부는 자치구의 북쪽과 서쪽만을 다스렸다.


2003년 이라크 침공당시 미군 특수부대는 본부를 아르빌 바로 외곽지역에 두었다. 

2003년 4월 10일 바그다드가 함락된 이후 아르빌은 승전을 크게 반겼다.


사담 후세인의 몰락 이후 다른 이라크 지역과는 독립적이고 산발적인 폭력만이 아르빌에 나타나고 있다. 

2004년 2월 1일 PUK와 KDP가 주최한 Eid 휴일 축제에 연속 폭발테러가 일어나서 109명이 사망했다. 

이슬람 단체인 Ansar al-Sunnah가 이 테러를 저질렀다. 

2005년 5월 4일 또다른 폭탄테러가 60명의 시민을 사망하게 했다. 

이러한 폭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느낀다.


2005년 새로운 이라크 헌법에서 쿠르드 자치정부 (Kurdistan Regional Government)를 명백히 인식하였고, 

2006년 1월 독립되었던 두 지역은 협정을 통해 다당제의 쿠르드 정부를 아르빌에 두기로 의결하였다. 

2006년 5월 현재 통일된 쿠르드 정부가 공식적으로 존재한다.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s)


아르빌은 수 세기 동안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었다. 이는 아르빌이 실크로드의 주요 기점이었기 때문이다.


 


여행


아르빌 국제공항이 이라크 국기가 아닌 쿠르드 국기를 휘날리면서 Jalal Talabani와 Masoud Barzani 같은 지도자의 사진이 걸려있는 가운데 2005년 가을 문을 열었다. 

다수의 중동국가와 오스트리아 항공에 의한 비엔나까지의 항공편이 있다. 로얄 요르단 항공은 암만까지 연결되며 쿠르드 항공은 중동의 여러곳에 노선이 있다.


더욱이 KRG는 3억2천5백만불을 들어 기존 터미널 옆에 새 공항을 건설하고 있는데, 현존하는 가장 큰 항공기인 소련의 안토노프 225 화물기와 미국 C-5 갤럭시 등을 수용할 수 있다. 

2008년 완공을 목표로 작업중이다.


비자정보

미국인과 유럽인들에게 도착비자가 가능하며, 다른 국적자들은 사전에 비자를 받아야 한다. enforcement of this policy became more strict.

(역자추가) 한국인들은 2008년 10월 현재 이라크가 여행금지국가로 지정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사전에 정부의 방문특별허가를 받고 현재 영사관에 사전 입국통보를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