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출장은 나름 빡빡한 스케쥴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장방문이 2회에 회의가 2회 면담이 몇 건 등등 말이죠.
여기 중동이 언제나 늘 항상 그렇듯이 이런 생각은 그저 제 생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네, 중동은 계획대로 되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죠.
일단은 발표를 열라 준비했던 2회의 회의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는 담당 공무원이 "너무 바빠서...." 라는 얘기를 했고요 (그럼 왜 약속을 잡았던거야 -_-;;;;;)
다른 하나는 담당하는 공무원 할아버지가 심장마비가 왔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현장 방문을 위해 아르빌에서 슐레마니아로 이동하는 도중에 코야에 들려서 할아버지를 문병하기로 했습니다.
코야는 아르빌과 슐레마니아 사이에 있는 도시로 많은 문인들을 배출했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 나름 빠른 발전을 보이고 주민들도 자존심이 있는 곳입니다.
아르빌을 떠나면서부터 비가 오더군요.
'술리 가면 조금 나아지려나'
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습니다.
코야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헤매면서 겨우겨우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러니까 이 병원은 간판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코야라는 도시에 새로 개발되는 구역에 있었습니다. 당연히 헤멜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흑흑-
나름 새로 지어져서 시설은 깨끗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허억- 할아버지는 일반 입원실이 아닌 중환자실에 있는 겁니다.
조심스레 들어가니 할아버님은 침대에 걸터앉아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네네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이는군요 -_-;;;
"아니,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우고, 매일 운동하고, 혈압도 정상인 내가 심장마비라니..."
그렇죠 얼마전 심장에 문제가 왔던 다른 공무원 할아버지는 줄담배와 짙은 커피와 달디단 터키쉬 딜라이트를 끼고 사시니까 어느정도 원인을 찾을 수 있는데 말이죠. 참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달려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립군으로 젊음을 바친, 이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고마운 할아버지와 병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준비한 꽃을 전하고 (아니 왜 장미를 이렇게 러블리하게 만든거야) 병원을 나섰습니다.
병원에서 나오자 빗줄기는 더 굵어졌습니다.
평소보다 시간이 더 걸려서 슐레마니아 숙소에 도착했죠.
잠깐 현지 직원을 교육하고 방에 올라오자 천둥도 치고 장난이 아니더군요. 그냥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특별한 저녁 초대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특별한 저녁이란 '특별한 사람'을 만난다기 보다 '특별한 음식'이 있는 저녁이었죠.
바로, 이 빗속을 뚫고 저녁을 먹으러갈 가치가 있는 쿠르드 야생 쌀과 쿠르드 식 닭백숙입니다.
'그게 뭐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당신들.... 그래요. 이 음식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불쌍한 눈 -_-)
일단 야생쌀로 만든 밥은 씹을 수록 그 맛이 살아옵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로서는 뭔가 그윽한 과거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덕분에 배가 불러도 계속 먹고 있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토종닭으로 만든 닭백숙은 닭비린내가 전혀 없으며 완전 부드럽습니다. 이 국물로 만든 스프도 예술이죠.
밥에 닭고기를 올리고 국물을 슥슥 비벼서 먹노라면.... 아아아-
식당이 어두웠긴 했지만 아아 아이폰 3Gs의 화질 열라 구리네요. 제발 폰 좀 바꿔줘~
이렇게 과식으로 저녁을 먹고 아침에 일어납니 날씨는 전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술리의 아침은 8도 앞으로 이틀간 비가 계속 온다고 합니다.
결국 오늘의 현장 방문은 취소되었죠. 내일은 가능할지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럼 당신 2회의 회의가 무산되었고, 이미 현장 방문 2회 중 1회는 무산된 것 아니야?'
라고 물으신다면 네 맞습니다.
왠지 너무 중동스러운 대답이지만 이 곳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고, 그 모든 상황에는 핑계거리가 있습니다.
그런 곳이죠.
비가 오니 파전에 막걸리가 땡기는 주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