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쿠르드 이야기

자그로스 항공을 타보다

mmgoon 2009. 2. 10. 05:24
두바이에서 쿠르드로 가는 항공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자그로스(Zagros) 항공과 쿠르디스탄(Kurdistan) 에어라인 이지요.
인터넷 찾아보셔도 아마 별 정보가 없을 겁니다.

이 두 항공사 모두 비행기를 보유한 항공사가 아니라 전세기를 이용한 charter flight입니다.
이런 이유로 주변에서 여러가지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이번 출장에서 드디어 경험을 했습니다.

일단, 두 항공사 모두 인터넷이나 여행사를 통해서 예약을 받지 않습니다. 카드도 안되고 오로지 현찰을 들고가서 표를 구입해야 합니다. -_-;;;
얼마전에 이라크에 갔을 적에 자그로스 항공이 망해서 쥬피터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아직도 표는 자그로스로 팔리더군요.

암튼 표를 들고 두바이 국제공항중에서 못사는 나라 항공사들만 모아두었다는 2 터미널로 갔습니다.
분위기가 색다르더군요 흠흠-
카운터를 확인하려고 전광판을 보니까 우리 비행기는 2시15분에 있고 또 2시45분에 아르빌로 가는 비행기 한 편이 더 보였습니다. 왠지 불안하더군요. 왜냐하면 아르빌에 이렇게 두 편이 동시에 갈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로 다른 비행편으로 또 서로 다른 시간대로 표를 팔고는 두 편을 모아서 2시45분에 한 비행기로 출발을 시키더군요 -_-;;;

버스를 타고 비행기 근처로 갔습니다.
어헉-
비행기에 어떠한 글자도 그림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완/전/한 흰색입니다.
여러 항공사에게 빌려주는 전세비행기라는 티가 확 나더군요. 보잉 737 구형이었습니다.

자리에 올라가서 스튜디어스에게 표를 보여주면서 "13D에요" 했더니 "맨 뒤로 가세요" 하는 겁니다.
"넹?" 했더니 "이 비행기에는 11열하고 13열이 없다구요. 맨 뒤에 가서 아무데나 앉으세요" 합니다. 그것도 얼굴에 '이런 일이 한두번이야?' 하는 표정으로요.
결국 맨뒷자리 뒤로도 안넘어가는 자리에 끼어서 앉아야 했습니다. 물론 당황항 표정에 11열과 13열사람들과 함께요.

그렇습니다. 이 항공사.... 표를 팔때까지 무슨 기종의 비행기가 올지 모르는 겁니다. 아아- 게다가 두 편을 합쳐서 한 비행기에 넣으니 빈 자리도 없이 꽉꽉 들어찹니다.

중간에 밥도 줍니다.
쌀밥과 닭고기와 완두콩과 당근 삶은 것을 줍니다. 뭐 맛은 못먹을 정도는 아니라는거.
그리고는 휙휙휙 식판을 걷어가더니 커피를 줍니다.
그렇지만 암 생각없이 식판과 함께 있던 커피잔을 반납한 사람은 못 마십니다. 다행히 저는 빼놔서 한 잔 마셨습니다. 아아- 맥스웰 커피 한 숫가락 넣고 머그컵으로 5잔쯤 만든 맛이 납니다.

이런 항공사니까 스튜어디스 언니들도 나름 즐겁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료고 택싱하는데 전화를 걸어대시고, 내가 아이팟으로 영화보고 있으면 바로 와서 구경하시고, 착륙해서 나가려고 기다리는 동안 내 핸드폰을 빌려서 기능 테스트하시고 (본인은 아이폰이었다죠), 이라크에서 일하냐 한국사람이냐 역시나 한국배우중에는 김래원이 최고다, 하버드 러브스토리가 한국드라마에서 최고인듯 하다, 김래원과 같이 나오는 여자 주인공은 알게뭐냐 등등의 대화를 아주 큰 소리로 나눴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쳐다봐서 부끄러웠지만 언뉘들 걍 무시하시더군요.
결국 떠나는 내 등 뒤로 "사랑해~" 하고 아주 크게 외쳐주시는 센스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아아-

오늘 비엔나로 나오면서 오스트리아 항공을 타자 그 동안 거지같다고 말했던 오스트리아 항공이 진짜 멋있게 보이더군요.
앞으로 얼마나 더 이 항공을 이용해야 이곳에서 일이 끝날까요.
암튼 자그로스 항공 첫 이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