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에서 특히나 나처럼 장기 출장을 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하게 챙길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주저하지 않고 '노트북 컴퓨터'라고 할 것이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이런저런 나라를 떠돌아 다녔고, 그것도 대부분의 경우 장기로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노트북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영국에 있을 적에는 삼성센스 노트북을 사용했지만 어디까지나 연구실에서 논문 쓰는데만 사용했고, 실제로 워크스테이션에 붙어있는 시간이 더 많았었다.
베트남에서는 도시바, 컴팩, 아이비엠 등등의 노트북을 전전했지만 어디까지나 시추선에 올라가거나 하노이같은 곳으로 협상이나 기술회의 하기 위해서 들고 다녔었다.
그러나,
여기 예멘은 전혀 상황이 다르다.
이번에 나오면서 사가지고 온 후지츠 노트북은 이 곳에서 내 인생을 함께하고 있다.
일단 회사에 가면 배정된 데스크탑이 없기 때문에 (나는 발령이 아닌 기술지원 성격의 파견이다) 이 노트북이 주요 업무도구이고,
당근 회의시에 프레젠테이션용이고, 현장에 갈적에 데이타를 집어넣고 다니고,
호텔에 돌아와서는 뮤직 플레이어이고, 밤에 외로울적에는 영화와 드라마 감상을 하기 때문에 거의 잠잘때를 빼놓고는 늘 함께한다.
생각해보면, 영국에는 그토록 우울한 날씨를 무색하게 만드는 함께 술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늘 함께 있었고 (물론 해피맨, 홀리트리, 암스트롱건 등등의 펍들도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업무에 밀리고 인간관계에 힘들어할때 아무생각없이 옆에 와서 같이 히히덕 거릴 수 있는 바에서 일하는 언니들이 있었다.
결국 회사에서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와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체육관에서 열라게 뛰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 나라가 노트북을 끼고살게 하는 것이다.
내일도 이쪽 국영석유회사랑 길고 긴 회의가 있다.
다시 노트북을 끼고 가서 발표도 하고 틈틈이 회의록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다시 방에 놀아와서 이전에 다 봤던 프렌즈를 혼자서 히히거리면서 볼 것이다.
음, 노트북이 너무나 소중한 그런 나라다.
한국에 돌아가면 맥북이나 하나 구입할까나....
주제는 슬슬 외로워지고 있다는 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