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09:50:00 (예멘 사나 시간)
금요일이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의 일요일 같은 시간이다.
방금전까지 와이셔츠와 바지를 다리고 그 동안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가끔은 완벽한 단절은 아니라고 이 '단절'이란 것을 예멘에서 경험한다.
지금이라도 휴대폰을 꺼내서 한국이고 베트남이고 전화를 걸수도 있고,
하루에 25불의 각오를 하면 지금이라도 무선인터넷으로 웹서핑을 할 수도 있지만,
한국시간으로 금요일 오후 4가 되어가는 지금, 누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무슨 얘기를 할까 생각해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고,
굳이 인터넷에 연결을 시켜서 뭔가를 할 일도 없는 상태다.
그런 단절이다.
이러때 듣는 노래는 참으로 달다.
예전에 그러니까 인터넷이 핑핑도는 한국에 살때,
그리고 그 때 아이엠에프였고 도무지 회사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만연했던 시절에 미친듯이 거의 삶의 목적처럼 로모에 매달렸고,
열심히도 일본 음악들을 다운받아서 Iomega Zip Disk로 (기억 나시는지?), 느려터진 CD burner로 (외장형이었다) 구어대던 음악을
그리고 7-8년이 지난 지금 건조해서 입술이 갈라지는 예멘의 호텔방에서
이제는 그리 다루기 힘들도록 컸던 mp3파일들이 하드에 한쪽 구석을 차지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열심히 흘러나오고 있다.
히스테릭 블루의 그로잉업에서 후타리 보치로 넘어가고 있다.
지난 일주일 간 뭘 했던가 생각하고 있다.
그래 아래 사람들에게 몇번인가 너무 강한 어조로 얘기를 했고, 본사 기술 감사팀과 긴긴 싸움을 했고,
베트남 비서들에게 몇번인가 부탁을 했고, 몇몇 프로젝트의 work scope들을 짰고, 몇몇 용역들의 시장조사를 했고,
두 개 광구의 컨소시엄 운영위원회에 참석을 해서 회의록을 작성했고, old Sana'a를 손님들 핑계를 대고 방문했으며,
무엇보다도 고양이들과 아주 '약간' 친해졌다.
늘 조금씩 거두고 조금식 먹는 그런 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작 한 기간 동안 줄기차게 뭔가를 (음악 파일이든, 책이든, 사진들이든) 모아들이기만 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걸 천천히 즐기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뭐 늘 그렇듯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은 어색하지만 금요일 토요일로 이어지는 주말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장윤정의 첫 사랑이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