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중얼거림

앗시리아 사람들의 간략한 역사

mmgoon 2013. 12. 19. 17:57

앗시리아라고 하면 뭐랄까 저 같은 이과생들은 세계사를 배울때 처음 잠깐 나왔다가 바빌론에 멸망하는 고대 국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 겁니다.


그러다가 이라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아, 저 친구는 앗시리아 사람이야" 라는 식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앗시리아라는 나라는 멸망했을지 몰라도 앗시리아 사람들은 나름대로 아직 그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죠.

그러다가 문득, 앗시리아와 관련된 홈페이지를 발견했고 이들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요사이 미국에 의한 무슬렘에 대한 폭력이 이 곳 중동에서는 많이 거론됩니다. 

과연 무슬림들은 그렇게 당하고만 살아온 것일까요? 그들이 기독교가 악날한 종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부족한 번역이지만 (게다가 날림 -_-;;)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앗시리아인들에 대한 간략한 역사




현재의 앗시리아인들은 전통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하는 중동 최고 문명인 고대 앗시리아 제국의 후손으로 6760여년의 역사를 가진다. 앗시리아인들은 아라이아인, 아랍인 혹은 쿠르드인이 아니며 종교도 이슬랑이 아니다. 앗시리아인들은 중동에서 아람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로 고유의 언어와 문화 그리고 전통을 가지고 있다. 비록 앗시리아 제국은 기원전 612년 멸망했지만 역사와 기록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초가된 앗시리아 왕국은 도시화를 장려하고, 영구적인 거주지들을 건설하고, 도시를 만들었다. 이들은 용수로와 수로를 만들어 농업과 관개시설을 발달시켰다. 언어를 발전시켜 작문, 교역, 교류를 위한 단일된 수단으로 정착을 시켰다. 교역을 장려하여 안전한 교역로를 확보하고, 성문법을 통해 시민들과 재산을 보호했다.  이들은 사무, 문서와 관련되어 뛰어난 능력을 보여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은 도서관을 건립하였고, 기록물들을 관리하였다. 이를 통해 부와 지식을 축척하였다; 군대를 보병, 기병, 마차병 및 군수병으로 편제하여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였고, 이러한 고유의 문명을 이용하여 최초로 제국을 건설하였다.


앗시리아의 중심부는 현재 이라크 북부, 시리아 북동부, 터키 남동부 및 이란의 북서부에 위치한다. 

고대 앗시리아의 수도인 니네베의 유적은 북부 이라크 모술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이후 그리고 동안 자행된 앗시리아인에 대한 대학살(Assyrian Holocaust )  이전에 앗시리아인들은 터키 남동부Harran, Edessa, Tur Abdin, Hakkari, 시리아 북동부Jazira, 이란 북서부Urmia, 북부 이라크 모술 지역에서 수천년간 살아왔다.



 


4백만명의 앗시리아인들은 전 세계로 흩어져 살고 있다. 1/3정도는  북아메레카와 유럽, 호주에 거주하고 있는데 거의 46만명 정도가 미국에 살고 있다. 나머지 앗시리아인들은 이라크, 시리아에 주로 살고 있고, 소수가 터키, 이란, 레바논, 요르단에 거주한다.



앗시리아인들을 시리아 사람들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비록 일부 앗시리아인들은 시리아 사람이고, 시리아라는 말이 앗시리아에서 왔으며, 시리아 자체가 앗시리아 문명의 일부였기는 하지만 현재의 시리아 사람들은 아랍인들이다. 게다가 앗시리안들은 아랍인이 아니고 지속적이고 고유한 인종특성, 언어, 문화 및 종교를 근동의 아랍화 이전부터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17세기까지 이 지역에 들어오지 않은 아랍인과는 다르게 앗시리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토착민들이다. 현재까지 앗시리아인들은 아람어라고 부르는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언어를 사용하셨다. 셈족의 언어인 아람어는 히브리어 및 아랍어와 연관되지만 이들 언어보다 앞 선 언어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아랍인들이 이슬람교도인 것에 반해 앗시리아인들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인들이다.


앗시리아 인들은 사도 도마(Apostle St. Thomas)를 통해 1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비록 7세기경 여러차례 이슬람의 정복이 있었지만, 앗시리아 동방교회(Assyrian Church of the East)는 번창했고, 교세가 천만명까지 확대되었다. 앗시리아 선교사들의 열심은 다른 지역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 일본, 필리핀으로 최초 선교를 시작하였다. 동방교회를 중국 시안에 중심에 두고 성서변역을 통하여 이미 7세기 초에 앗시리아 교회가 중국에서 번성했다. 초기에 앗시리아 교회는 두 개의 지파로 나뉘었는데, 시리아 정교회(Syrian Orthodox Church)와 동방교회(Church of the East)가 그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이들 앗시리아 교회의 지파들은 갈데아 교회 (Chaldean Church, Uniate Catholic), 시리아 카톨릭, 마로나이트 교회(Maronite Church)로 발전되었다. 이슬람의 지배 후 끊임없는 핍박으로 인해 많은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은 레바논 산지(Mount Lebanon)에 있는 기독교 준자치지역으로 이동했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서방 개신교 및 카톨릭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특히 19세기부터 일부 앗시리아 개신교신자들이 생겨났다. 앗시리아인들의 기독교 믿음과 전도활동으로 인하여 주변 비기독교 국가들의 박해, 순교, 인종 청소가 일어났으며 결국 앗시리아 기독교 인구의 극적인 감소를 가져왔다. 최근에 그리고 슬프게도 영국이 앗시리아를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연합국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만들어진 앗시리아의 독립국은 일련의 주변 국들 즉, 터키 오토만 제국, 쿠르드, 아랍, 페르시아에 의한 학살을 불러왔다. 비록 많은 지정학적, 정치적 이슈들이 이러한 앗시리아인들에 대한 공격에 근간은 터키, 쿠르드, 페르시아인들이 앗시리아인들에게 성전을 선언한 결과이다. 이 결과 1843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앗시리아 대 학살(Assyrian Holocaust) 기간동안 인구의3/4에 해당하는 75만명의 앗시리아인들이 학살되었다.


분쟁 및 앗시리아 대학살의 동안 앗시리아인들은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고 여러 곳으로 도망을 가게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조상의 딸인 터키의 메소포타미아를 떠나서 이라크의 Mosul Vilayet, 시리아의 Jazira, 이미 많은 앗시리아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이란의 Urmi 평원으로 이주한다. 이 후 1915년에 다시 이들 지역에서 앗시리아인들에 대한 학살이 일어나고, 많은 앗시리아인들은 다른 나라와 대륙으로 피난을 간다. 1915년의 대학살은 현대 역사에서 주요한 정점으로 그 당시까지 살아 남았던 앗시리아 공동체를 작고, 연약하고, 서로 떨어져있는 공동체로 만들어 버렸다.


현재 전 세계에 분포하는 대부분의 앗시리아인들은 1915년 대학살을 피해 중동에서 떠나온 사람들이다. 자신들의 고향을 떠나 중동의 다른 나라로 이동했던 사람들은 1대가 지나고 나서 바로 다시 서방으로 망명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많은 앗시리아인들이 서방에 살고 있으며 이들 가족들은 3대에 걸쳐 새로운 나라들로의 이동을 경험했다. 예를 들면 터키에서 이라크로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동안 앗시리아인들은 영국편을 들었고 그 조건으로 앗시리아의 독립국을 약속받았다. 그러나 전 후 영국이 중동국들에 대한 정치적인 이유로 이러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그 결과로 인구의 2/3가 학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33. 8월 이라크 북부에서 시작된 시멜르 대학살 (The Simele Genocide, Premta d-Simele)을 비롯하여 수 많은 대학살들이 앗시리아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이 대학살은 단지 시멜르뿐만 니라 도훅 및 모술 지방에 있는 63개의 앗시리아 마들에 대해 이루어졌으며 3000명의 무고한 앗시리아인들이 살해되었다. 현재 이 마을들은 불법적으로 아랍인과 쿠르드인들이 점령하고 있다.


현재 앗시리아인들은 중동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아랍화 정책, 쿠르드화 정책 등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 핍박을 받고, 서방으로 이주를 종용받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