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지질학/석유와 천연가스

세계 최초의 유정이 시추된 비비-헤이밧 유전 이야기

mmgoon 2021. 10. 23. 11:32

 

올해 8월이 비비-헤이밧 (Bibi-Heybat) 유전이 생산을 시작한지 175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 유전은 아제르바이잔의 카스피해 연안에 있는 압세론(Apsheron) 반도에 있습니다.

이 지역은 유가스 침출물 (oil and gas seeps)에 붙은 불 때문에 "불의 땅"으로 알려진 곳으로, 세계 최초로 원유가 생산된 곳입니다.

 

1846년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 있는 비비-헤이밧 유전에 첫번째로 유정(oil well)이 시추되어, 소위 '검은 황금'을 생산 시작합니다.

1899년까지 아제르바이젠은 전 세계 원유 생산량의 1/2을 생산합니다.

1899-1901까지 러시아 (바쿠) 석유 산업이 연간 약 8천4백30만 배럴을 생산합니다. 당시 미국의 생산량은 연간 6천6백7십만 배럴 수준이었으니 그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펜실바니아에서 드레이크가 최초로 현대적인 시추로 원유를 생산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아제르바이잔이 앞서서 시추가 이루어졌습니다.

 

 

고대 생산 역사

노블과 로스촤일드 가문이 바쿠에서 엄청난 부를 거둬들이이 이전 역사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실제 이 지역의 원유 생산은 3,000년 이전부터 시적되었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현재 이란인 페르시아의 아키메너스 제국의 첫번째 황제인 키루스 2세 (Cyrus II (the Great))의 군대가 압셰론(Absheron)의 기름을 사용해서 적의 요새들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프루타크에 의하면 이로부터 200년이 지나 마르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압세론 반도에서 나온 기름으로 불을 밝혔다고 합니다.

또한 바쿠 근처 수라카니(Surakhani) 등에 있던 배화교 사원들에서는 압셰론 반도 근처 피랄라이(Pirallahi) 섬의 슈바니(Shubani) 마을에서 나온 기름으로 불을 밝혔었는데 미디아 (현재의 아제르바이젠)를 공격한 알렉산더 대왕에게 사원들이 파괴되었다는 기록 있습니다.

 

아랍의 역사학자인 이스타리 아부 이삭에 의하면 8세기 무럽부터 바쿠에 사는 사람들은 나무가 없는 관계로 땅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난방을 했다고 하며, 9세기 아랍의 여행가인 발라죠리 (알 벨라주리 아흐메드)는 자신의 '국가 점령'이라는 책에서 '압셰론의 정치적 경제적 생활은 오랫동안 기름과 연관되어 있다'라고 서술했다. 

 

해안에 위치한 비비-헤이핫 유정들

 

19세기

카스피해에서 현대적인 생산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초입니다.

1803년 바쿠의 상인인 하지 카심벡 만수르베코프 (Haji Kasymbek Mansurbekov)는 바다에 2개 유정들을 팝니다.

유정들은 해안가 마을인 비비-헤이밧 (헤이밧 아줌마라는 뜻)으로부터 18m, 30m 정도 떨어져 있었고, 나무로 집을 만들어서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했습니다.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인 일함 알리예프 (Ilham Aliyev) 가 복원된 비비-헤이밧 최초 유정에 서있다 (2017.4.26)

 

1834년, 니콜라이 보스코보이니코프 (Nikolay Voskoboynikov)가 원유로부터 케로젠을 생산하는 특수 정유장치를 개발하였습니다.

3년 후 그의 정유공장은 발라카니 (Balakhani)에서 가동을 시작하여 세계 최초의 정유공장이 됩니다. 참고로 사무엘 키어의 미국 정유공장은 1853년에 처음으로 가동됩니다.

 

이 후 보스코보이니코프가 제안안 시추를 통한 원유 생산 방식이 (이전에는 땅을 파는 방식) 러시아 정부, 아베르바이잔 지도부에게 소개되고, 시추를 위한 자금과 허가를 받아냅니다.

1844년 드디어 비비-헤이핫 유전의 현대적인 첫 시추가 시작되었고, 세계 최초의 유정 (시추심도 약 20m)이 1846년에 비비-헤이핫에서 시추됩니다. 이는 세계 최초의 현대적 시추라고 알려진 미국 펜실바니아의 드레이크 유정 (1859년)보다 10여년 빠른 시추입니다.

이 시추를 통해서 원유 생산은 유정을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임을 최초로 밝혀냅니다.


비록 최초 유정은 1846년에 시추되었지만, 비비-헤이밧 유전의 공식적인 발견시기는 1871년입니다.

현대의 기준의 아제르바이잔에 대규모 석유산업의 시작은 1871년으로 보는데, 바쿠 인근 비비-헤이밧, 발라카니 (Balakhani), 사분치(Sabunchi), 로마니(Romani) 유전들이 발견된 해입니다. 이후로 원유 생산은 계속 이어집니다.

1872년에 원유 탐사를 위한 법령이 제정됩니다. 또 이 해에 최초 원유 입찰이 바쿠의 마을들인 비비-헤이밧과 바라카니에서 시작됩니다.

헤이밧 유전은 플라이오세 사암층에서 생산했는데, 거대한 단층이 발달한 배사구조입니다.

 

19세기 생산정이 원유를 뿜는 모습. 요사이는 이러면 큰일 납니다.

 

20세기

카스피해에서 상업적으로 원유와 천연가스를 생산시작한 때는 1906년으로 아제르바이잔의 Union of Oil Industrialists사가 바쿠 외곽에 비비-헤이밧 만에서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1909년부터 1922년까지 865 에이커의 유전이 개발되었습니다.

 

1920년까지 아제르바이잔에는 9개의 유전이 개발되었습니다.

비비-헤이밧, 발라카니(Balakhany), 사분치(Sabunchi), 로마니(Romany), 비나가디(Binagadi), 수라카니(Surakhani), 슈바니(Shubany), 피랄라히(Pirallahi) 그리고 나프타라(Naftalan) 들로 압세론 반도에 있는 마을 이름들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1923년에 5번 시추공에서 원유가 분출되었는데, 최초로 일리치(Ilyich)만에서 해상유전이 개발됩니다 (나중에는 바일 리마니 Bayil Limani 유전이라고 불리죠). 이 시기에 벌써 해상유전들이 바쿠 원유의 10%를 생산했습니다.

다음 해에 71번 시추공이 일리치만에 나무로 만들어진 인공섬에서 시추되었고, 이 시추공이 세계 최초로 해저로부터 해상으로 생산을 하게 됩니다. 물론 1890년 미국 오하이오주에 Grand Lake St. Mary, 1911년 루지아나 Caddo 호수에서 유정이 시추된 적이 있지만 이들은 담수 호수인 반면에, 71번 시추공은 해상에 시추된 것입니다.

이후로 카스피해의 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1920년대초부터 고도의 지구물리적 탐사기법 그러니까 중력, 자력, 전기, 탄성파 탐사들이 바쿠 지역 유가스전 탐사를 위해 사용됩니다.

이 때 압쉐론 반도 해안선을 따라서 긴 배들을 이용해서 유정을 시추했고, 이후 신형 선박들로 변화합니다.

 

1907년 스탈린이 바쿠 유전 노동자들에게 연설하는 모습

 

2차 세계대전 동안 바쿠 유전들은 코카서스내 독일의 주요 공격목표였습니다.

1971년까지 10억톤 (70억 배럴 이상)의 원유가 아제르바이잔에서 생산됩니다.

 

 

21세기

2017. 11. 8일 아제르바이잔 석유산업은 새로운 이정표를 달성합니다. 즉, 20억톤 (147억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 것이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를 바쿠에서 열었습니다.

 

2021년은 앞서 말했듯이 아제르바이잔 생산 175년이 되는 해입니다. 

참고로 비비-헤이밧 유전은 아직도 생산중이랍니다.